노생거 사원
스크린으로 간 문학 4. ≪노생거 사원≫
이미애가 옮긴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
어쩌면 제인 오스틴 최고 작품
사원은 고색창연할까? 미지의 과거가 잠들어 있을까? 그러나 이곳은 밝고 깔끔하다. 주인공은 이성으로 행동하고 감상소설의 기대는 무너진다. 오스틴은 뭘 쓴 걸까? 유행을 부정해 유행을 앞서 간다.
헨리가 지금은 진심으로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지만, 원래 그의 애정은 고마움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해야겠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자신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그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로맨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상황이고 여주인공의 품위를 몹시 떨어뜨리는 상황이라는 점을 나는 인정한다.
≪노생거 사원≫,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185쪽
그녀는 누구인가?
열일곱 살의 아가씨 캐서린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상대 남성은 누구인가?
스물여섯 살의 헨리 틸니다.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는가?
시골에 살던 캐서린은 배스라는 도시에 왔다. 앨런 부부와 함께 파티에 갔다 틸니를 만난다.
첫눈에 빠지는가?
보통 로맨스 소설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틸니와 만나기를 고대하고 그를 따라다닌다.
주변 분위기는 어떤가?
헨리의 아버지인 틸니 장군은 무척 반기며 노생거 사원에 초대한다. 캐서린을 부잣집 딸이라 오해한 것이다.
오해의 원인은?
캐서린을 좋아했던 존 소프가 거짓말했기 때문이다. 존은 그녀에게 청혼까지 하지만 캐서린은 관심이 없다.
노생거 사원은 어떤 곳인가?
캐서린은 옛 수도원 같은 곳, 고딕소설의 분위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대식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기대했던 고딕소설 풍의 무시무시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틸니 부인이 감금, 살해됐을 거라는 캐서린의 상상은 사라진다.
이야기의 끝은 어디인가?
틸니 장군이 캐서린의 실체를 알고서 화를 내며 쫓아낸다. 헨리는 아버지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캐서린을 방문하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캐서린은 어떤 여자인가?
제인 오스틴 소설의 다른 여주인공처럼 똑똑하지는 않다. 평범하기 그지없고 순진하다. 고딕소설의 팬이기도 하다. 노생거 사원에 초대받고서도 모험을 기대하며 흥분한다.
당시 흔한 여주인공이었나?
그렇지 않다. 19세기 초 감상소설의 여주인공은 아름답고 선량하다. 남녀의 순수하고 지고한 사랑이라는 관습적 패턴이 있다. 고딕소설, 행위 지침서와 함께 당대의 지배적인 문학 장르였다.
이 소설이 당대의 패턴을 벗어난 이유는 뭔가?
이 소설의 남주인공은 순수한 여주인공에게 무조건 빠지지 않는다. 헨리는 캐서린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비꼬기는 당시 대중소설의 패턴을 뒤집는다. 하지만 풍자에서 더 나아가, 역설적이게도 그 장르들의 정신을 구현하면서 재창조하는 면도 있다.
어떻게 재창조하는가?
이 소설에서 캐서린과 헨리의 로맨스는 캐서린의 ‘고결한 마음’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 진정한 결합을 이루어 가는 감상소설의 패턴을 만들어 낸다.
풍자는 어떻게 재창조가 되는가?
오스틴이 첨예한 의식으로 고도의 기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당대 서사 양식의 패러디와 함께 그 정수를 포용했다. 오스틴의 소설 가운데 유독 소설 기법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소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소설, 즉 메타픽션인 셈이다.
오스틴의 작품 가운데 메타픽션이 또 있나?
없다. 오스틴의 완성된 소설 여섯 편 가운데 ‘별종’으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작품이다.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반어와 풍자로 일관하면서 전체가 하나의 패러디를 이룬다. 다른 작품보다 경쾌하고 발랄하며, 신랄한 풍자와 위트, 기지가 빛을 발한다. 오스틴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여주인공을 조롱하며 즐거워한다.
문단의 평은 어떤가?
제인 오스틴의 초기 습작 소설에서 나타난 풍자, 유희 정신의 맥을 잇고 있으며, 그 결정체를 보여 준다. 비록 다른 작품에 비해 길이가 짧지만 이 소설을 오스틴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 평자들도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미애다. 영국 소설을 전공했고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연구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