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문학사에는 ‘전후 문학’이라 불리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문학적 분기점을 맞았던 기존의 작가들에 비해, 전쟁 이후 등장한 새로운 작가군은 전쟁을 문학적 원체험이자 근원적인 존재론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존 작가들과 구분되었고 또한 태생적으로 비극적이었다. 손창섭, 장용학, 오영수, 오상원, 그리고 강용준 등 전후 세대 작가들은 전쟁의 광범위한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만큼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객관 현실에 대한 구체적 탐구보다는 체험의 강렬성에 바탕을 둔 관념적인 면모를 많이 띠었다. 전후 소설에 자주 나타나는 서사 미달의 양식은 이에서 연유한다.
강용준은 반공 포로 출신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이력을 통해 소설 작업을 펼쳤다는 점에서 전후 문학에서 특이한 위치를 점한다. 강용준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지만 이후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동래, 거제도 고현리, 광주 사월산 등지에서 만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다 1953년 사월산 수용소의 철조망을 뚫고 탈출했다. 데뷔작인 <철조망>(1960)이 대표적이거니와, ≪밤으로의 긴 여로≫(1969), ≪사월산≫(1971), ≪탈주자들≫(1973), ≪유월에서 팔월 사이≫(1980) 등의 작품들이 인민군 참전과 포로 생활, 수용소 체험 등을 다룬 것들이다. 이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전쟁의 폭력성과 비참함을 고발하고 전쟁이 가져온 인간 조건의 비극적 숙명을 성찰해 왔다.
<철조망>(1960)은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의 내면세계를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인상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주인공 민수는 반공 포로 결사대의 책임자로서 포로수용소의 ‘적색 캠프’를 전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쿠데타를 기도하다 실패한다. 수용소의 비밀 지하실에 감금당한 그는 동조자를 밝히고 쿠데타의 목적을 대라는 모진 고문을 받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그가 끝내 입을 열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애국심이나 정의감이나 더욱이 희생심 같은” 짐작할 만한 상식적인 이유 앞에서, 작가는 그 상식을 거스르고 비켜나는 방식으로 답을 마련해 놓는다. 이것은 <철조망>이 통상의 반공 소설과 차별화되는 면모이자 이 소설이 지닌 개성적 미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 구속과 자유의 문제를 다룬 ‘철조망’의 상징은 <광인일기>(1970)에 와서 한국전쟁 이후의 병리적 삶의 양태와 군대와 사회 일반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으로 변주된다. 전쟁 체험의 직접성과 강렬함은 <철조망>에 비해 옅어졌지만, 철조망 이후 민수가 겪었을 그 ‘갈등’과 ‘무한한 시간’을 조순덕과 ‘나’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광인일기>는 <철조망>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또한 조순덕의 심리적 외상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광인일기>는 내면세계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었던 <철조망>과 그 소설적 방법론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사회·역사적인 관점이 아닌 존재론적인 내면의 문제로 다루는, 강용준의 고유한 소설적 개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자평
<철조망>에서 <광인일기>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를 둘러싼 광기와 구속의 역사 속에서 개인은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강용준의 소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해 여전히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야말로 강용준의 소설이 계속해서 읽히는 이유다.
지은이
강용준(姜龍俊, 1931∼)은 황해도 안악(安岳)군 용문(龍門)면 매화(玫花)리에서 부 강성직(姜聖稷)과 모 이한호(李漢湖)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교명(敎名) 루스로 영세를 받았다. 3, 4세 때 신천(信川)읍으로 이사했다. 6세 때 부모와 헤어져 고향 안악으로 돌아와 조부 및 백부 밑에서 성당 소속의 유치원에 1년 다녔다. 다음 해 신천의 가족들도 모두 고향으로 솔가해 왔다. 성당 소속의 봉삼(奉三)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안악중학교, 안악고등학교, 진남포(鎭南浦)공업전문학교 등을 거쳐, 1950년 평양사범대학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그해 7월 인민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 이후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동래, 거제도 고현리, 광주 사월산 등지에서 만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1953년 6월 18일 반공 청년 석방일에 사월산 수용소에서 철조망을 뚫고 탈출해, 이후 전남 함평군 대동면 용성리에서 약 3개월간 기식하다가 부산으로 옮겨 부두 노동 등을 하며 전전했다.
1954년 10월 2일 공병 소위(工兵少尉)로 임관해, 경북 영천 1205건설공병단 508철교중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1958년 오용숙(吳龍淑)과 경북 영천에서 결혼했다.
1960년 7월 <사상계(思想界)> 제1회 신인문학상에 <철조망(鐵條網)>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3월 31일 강원도 홍천에서 수도사단 공병대대 중대장으로 복무 중 전역했다. 출판협회 임시직으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1964년 사상계사에 입사해 1966년 퇴사했고, 이어 한국해외개발공사 공보실에 근무하다 1968년 퇴사했다. 같은 해, 장편 ≪태양(太陽)을 닮은 투혼(鬪魂)≫을 간행하고 단편 <악령(惡靈)>을 발표했다. 1969년 장편 ≪밤으로의 긴 여로(旅路)≫를 간행하고, 1970년 중편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했다. 1971년 <광인일기>로 한국일보사 제정 제4회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장편 ≪사월산≫ 연재를 시작했다.
1972년 <광인일기>가 일본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에 ‘세계 10대 소설’로 선정되어 전면에 소개되었고, 장편 ≪흑염(黑焰)≫ 연재를 시작했다. 1973년 단편 <비가(悲歌)>를 발표하고 장편 ≪탈주자들≫을 연재했다. 1974년 창작집 ≪광인일기≫를 간행했다.
1976년 ≪밤으로의 긴 여로≫로 대한민국문학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77년 창작집 ≪거도(巨盜)≫를, 1979년 장편 ≪가랑비≫를 간행했다. 1980년 장편 ≪사월산≫ ≪꼬르넷을 벗은 수녀(修女)≫를 간행하고 장편 ≪천국으로 이르는 길≫을 연재했다.
이후 15년 동안 ≪천국으로 이르는 길≫, ≪무정≫, ≪멀고 긴 날들과의 만남≫, ≪어느 수녀의 수기≫, ≪바람이여 산이여≫, ≪검은 장갑의 부루스≫, ≪낯설은 방≫, ≪파도 너머 저쪽≫, ≪탄≫, ≪광야≫ 등 다수의 장편을 상재하고, 중편집 ≪나성에서 온 사내≫와 작품집 ≪아버지≫를 간행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88년 ≪바람이여 산이여≫로 한국문학 작가상을, 1996년에는 ≪광야≫로 한무숙 문학상을 수상했다.
엮은이
권채린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철조망
광인일기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제 저 철조망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 그러면 그것으로 일은 끝난다. 그 뒤의 일은 자기로서는 관여할 바가 못 된다. 아마 무한한 시간이 열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 속에 인간의 갈등은 또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 침 뱉을 인간의 갈등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 편모라면 그것도 또한 그런대로 내버려 두자.
내게는 단지 철조망이 있다. 철조망 앞에서 나는 단지 초조할 따름이다.
-<철조망>